【인물탐구】 풍키우세 카나디아그룹 회장

작성자
kampucheanews
작성일
2020-04-2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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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50만달러가 100억달러로 2만배 증가

 



【캄푸치아신문 : 2019년 12월 15일】카나디아골드앤트러스트(Canadia Gold & Trust. CGT)에서 출발한 카나디아은행이 28년 만에 1~2위의 시중은행으로 성장했다. 카나디아은행이 이처럼 폭풍성장한 배경에는 풍키우세 회장<사진>의 집념과 노력이 있다.

상장기업이 많지 않고, 소득세 납부 순위도 발표되지 않은 캄보디아에서 누가 최고 부자인지는 객관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고 부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혹자는 풍키우세 회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개도국 부자들이 흔히 그렇듯 풍키우세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 케이스다.

1980년 태국 난민촌에서 난민 자격을 얻어 캐나다 몬트리올에 자리를 잡았을 때 그는 세일즈맨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만에 실업자가 됐다.

세일즈맨으로 일하며 번 돈으로 그는 몬트리올 시내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 식품 가게 안에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금세공 일을 시작했다. 장사가 잘돼 6년이 지나 첫 가게보다 4배나 넓은 곳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98년 송금사업에 손을 댔다.

“1988년 해외에 사는 캄보디아인들은 고국에 있는 친척과 가족에게 송금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는 한해 10만달러를 캄보디아에 보냈지만 2년 후인 1990년에는 200만달러로 늘었다.”

1990년대 들어 캄보디아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공산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채택하는가 하면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오랜 내전도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송금사업으로 자리를 잡자 풍키우세 회장은 사업 기회가 더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해보기로 했다. 1991년 귀국한 그는 삼촌인 풍펭첸 정부 고문과 찌어짠토 기획장관(현 중앙은행 총재), 차리엥 당시 중앙은행 총재 등을 만났다. 이들을 만난 후 영구 귀국하기로 했다.

처음 시중은행을 만들려고 했지만, 최소자본금 500만달러를 맞출 수가 없어 그는 중앙은행과 합작으로 카나디아골드앤트러스트(Canadia Gold & Trust. CGT)를 만들었다. 상호에 있는 카나디아는 캐나다(카나다)와 캄보디아를 합성해 만들었다.

1991년 11월 11일 금세공과 금화 발행, 대출을 주 업무로 하는 CGT가 설립됐다. 초창기 CGT는 못 공장과 알루미늄 냄비 공장, 간장 공장, 올림픽 시장의 환전상과 같은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했다.

2년 남짓 기간에 GGT가 뛰어난 실적을 보이자 NBC는 1993년 국제송금과 신용장 등 광범위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중은행으로 격상했고 이때 상호도 카나디아은행으로 바뀌었다.

1994년부터는 소액대출 서비스를 개시했고, 캄보디아가 미국으로부터 최혜국(MFN) 대우를 받기 시작한 1996년에는 캄보디아에 몰려드는 외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겸했다.

1997년 이틀간 캄보디아에서 제1당인 훈신펙당과 제2당인 인민당이 무력충돌을 벌였을 때 카나다아은행은 다른 은행과 다른 행보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많은 은행이 감히 문을 열지 못했지만 우리는 문을 열고 다른 은행 고객에게도 수표 할인 대출을 해줬다. 두 곳의 의류 공장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기도 했다. 또 모 나라의 대사관에 이자 없이 수표를 인출하여 학생들이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비행기 티켓을 마련하게 해줬다.”

비록 이틀 만에 끝난 무력충돌이었지만 탈출하는 기업인과 부정적인 국제사회의 시선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던 당시 훈센 제2총리에게 카나디아은행의 행동은 무척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다.

2000년 카나디아은행은 금융업무를 맡는 카나디아투자홀딩스(CIH)과 비금융업을 담당하는 해외캄보디아투자회사(OCIC)로 회사를 분리했다.

OCIC는 지금까지 다양한 주택·상업시설·공단 등을 만들었다.

카나디아공단와 소리아쇼핑센터(소완나쇼핑센터, 라따나쇼핑센터), 프놈펜 문화센터, 캄보디아 문화마을, 시하누크빌 인디펜던스호텔, 참까몬 주택단지 등이 OCIC가 만든 작품이다. 또 OCIC는 프놈펜시(市) 꼬삑섬 개발권을 얻기 위해 모니봉교량과 고가교, 도로를 건설하기도 했다. 2008년과 2010년 OCIC는 각각 올림피아시티와 츠로이창와시티 개발권을 얻었으며 지난해에는 프놈펜신공항 건설과 운영권을 얻기도 했다.

자본금 50만달러, 직원 20명 미만의 CGT에서 출발한 카나디아그룹은 현재 총자산 100억달러이상, 직원 1만5000명을 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런 장족의 발전 때문에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 카나디아그룹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있을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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